롱노즈 유감

롱노즈 유감

 


0. 이른바 "롱노즈": 코가 길어보여서 못생긴 들고양이. 디씨냥갤을 필두로 인터넷 일부 집단에서 유전 현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고양이 형질. 믿음의 내용은, '캣맘'들이 코가 길어서 못생긴 들고양이만 남겨두고 잘 생긴 들고양이만 선택적으로 입양해 가서, 남아있는 들고양이들이 차츰 못생긴 형태('롱노즈')로 진화했다는 것. 

(예시: https://www.inven.co.kr/board/maple/2299/7883423)




[문제점]

1. 롱노즈가 존재하는가?


고양이 코가 길어지긴 했는가?


"코가 긴 고양이가 존재한다"

"코가 길어보이는 고양이가 존재한다"
내지 "사람들이 고양이 코가 길어졌다고 느낀다"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사람의 예에서 보듯이 포유류는 체중이 몇 %만 불고 줄어도 얼굴이 둥글거나 뾰족해보일 수 있는 존재이다. 여기에 더해 고양이는 털빨도 있다. 물론 보는 각도도 압도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고 사진이라고 해서 딱히 객관적인 게 아니다. (얼짱각도라는 게 괜히 있겠는가?)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고양이 두개골의 치수를 재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고양이 두개골의 치수를 시계열적으로, 과학적이고 통계적으로 재어본 적이 없다.

과학의 세계에서 이건 '존재하지 않는다'와 거의 동의어이다. 



2. 롱노즈가 존재가능한가?


(1) 고양이 코가 진화적으로 길어질 수는 있는가?

진화되려면 우선 선천적인 형질이어야 하고 유전되어야 한다. 고양이 코가 유전적인 형질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동물의 외형은 분명히 사람의 인공 선택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형질이긴 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소련의 은여우 가축화 실험이 있다.

그러나 고양이의 코 길이에 대해서는 유전되는 형질일 것이라는 과학적인 '추측' 이상의 것은 없다. 아무도 실제 (은여우 가축화 같은) 실험으로 귀납적으로 입증하거나, 고양이의 유전자 중에 코의 길이(기준도 불명확하긴 하지만)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밝혀내어 연역적으로 입증한 예가 없다.


(2) 롱노즈의 자칭 '진화 메커니즘'도 문제다.

애초에 들고양이 입양은 우리나라 들고양이의 주된 선택압조차 아니다.
예컨대 서울시에 들고양이가 10만마리가 산다고 가정하자. (서울의 면적은 대략 6만 헥타르, 도시지역의 들고양이 평균 서식 밀도는 1.66마리/ha 정도이므로) 들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3년 또는 4년이라고 잡아도 고양이 개체수가 정상상태를 유지하려면 매년 3.3만 내지 2.5만마리가 죽든지 사라져야 한다. 서울에서 매년 길냥이가 2.5만마리나 입양될 수는 절대 없다. 실제 입양 건수는 2.5만마리의 1%라도 되면 다행일 것이다.

"외모선택적 입양"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은 고양이 사망 원인들이 고양이에게 선택압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들고양이 유전자 풀에는 항상 집냥이 유전자 - 사람이 선호하고 인위 선택해온 바로 그 고양이 형질 유전자 - 가 끊임없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애초에 고양이가 거기 왜 있겠는가?)

은여우 가축화 실험은 하다못해 최소한 조금이라도 가축화가 진행된 개체들의 유전자 풀을 원 개체군으로부터 매 세대마다 격리시켰다. 최소한 그정도는 해야 년 단위의 짧은 시간 동안 동물의 표현형을 진화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 기본조차 안 된 상태에서, 개체 생존 여부에 극히 일부의 영향만 미치는 사람의 인위 선택의 효과가 고작해야 몇년, 길어야 10몇년만에 나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 애매하고 불분명한 선택압으로 고양이의 형질이 실질적으로 바뀌려면 개나 소, 말 같은 동물의 가축화 과정과 비슷한 스케일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 대조되는 예로, 대서양 대구 같은 일부 물고기 종의 크기 감소 현상을 들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사람의 어로활동이 개체군 감소의 주된 원인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을 선택적으로 어획한 결과 비로소 수십여년만에 어류의 크기가 대폭 감소한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위 선택에 비하면 캣맘의 입양은 없는 거나 다름아닌 수준이다. 


3. 결론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롱노즈의 증거라고 해보았자, 그냥 대충 코가 길어보이는 고양이 사진들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그럴듯한 롱노즈 이론을 써내고, 커뮤니티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그런가 하고 봤더니 왠지 길어보여서 사진을 찍어올리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롱노즈는 흔한 인터넷 삼인성호다. 

들고양이 혐오든 캣맘 혐오든 뭐 다 좋은데, 과학 아닌 걸 과학으로 포장하지는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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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나무위키 롱노즈 항목을 보니, 토론의 결과로 결국 원래의 내용은 대부분 삭제되고, 롱노즈는 존재 여부도 입증되지 않은 인터넷 밈이라는 서술태도로 정리됐다.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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